저자서문 박인하

”’저자서문 : 100년의 역사, 15년의 연구”’

“한국 만화사는 아직까지 정본(政本) 없이 이본(異本)만 존재하는 텍스트이자, 개별 작가론이나 장르만화론, 연대별 만화연구가 부재한 채 축조된 부실의 성이다. 만화에 대한 연구나 저술이 부정확하며 완결적이지 못한 까닭은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만화 자체가 얼마 남아있지 않고, 남아있는 것도 대부분 개인 소장이라서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더불어 부분적으로 서술되는 만화의 역사도 대부분 필자의 기억에 의존하거나 몇몇 작가들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당대의 상황을 효율적으로 그려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글도 지적한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고백하며 1970년대 만화를 살펴보려고 한다.”

“저기 100년의 항해를 마친, 격랑의 파도를 헤치고 온 커다란 배 한 척이 보인다. 작은 배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은 거대한 배가 되었다. 한국만화는 계몽과 풍자에서 시작해 유머와 감동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으며 대중들과 만났다. 근원은 같지만 드러난 모습은 과연 한 배를 탄 부류인가 싶기도 했다. 삐라나 포스터에 실린 만화, 독재 권력의 횡포를 고발하던 신문의 4칸만화, 싸구려 풍선껌 한쪽에 붙어있던 조그마한 만화와 과학지식을 전해 주는 양장본 전집만화의 모양은 너무 다른 것이었다. 한 잡지에도 강렬하게 터치한 매서운 눈매의 사나이의 열정과 말썽꾸러기 소년들의 해프닝에 8등신에 금발을 휘날리는 남녀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었다. 만화는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에 빠지지 않고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만화방은 불량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다양함 속에서 지난 100년이 한국만화의 오늘을 만들었다.

한국만화 100년, 한 세기를 짧은 지면에 어찌 다 담아낼 수 있을까. 게다가 한국만화 연구는 자료부실, 기초연구부재 등으로 고고학이나 금석학에 비교할 만한 난이도를 갖고 있다. 게다가 각론의 세부연구가 미흡하다 보니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만화의 지난 100년은 약자들의 편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욕망하고, 그들 대신 고발한 시기였으니 하나하나 굵은 선들만 항해일지가 빼곡하다. 이 글은 한국만화 100년 동안 작은 배를 커다란 배로 만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첫 번째 글은 「한국현대예술사대계」 4권에 수록된 ‘만화‧애니메이션’편의 첫 번째 문단이다. 2004년 책이 출간되었으니 원고 마감은 2003년쯤 한 것 같다. 당시 예술사대계를 기획‧진행한 이영미 선생의 연락을 받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70년대 만화라면 나름 자신 있었지만 막상 세세한 부분에서 원자료에 접근이 어려웠다. 도대체 진짜가 무엇일까? 70년대 편을 끝내자 이영미 선생이 60년대와 80년대 편의 집필을 부탁해오셨다. 60년대는 더 답답했다. 기초자료의 연구성과는 고사하고, 기초적인 서지자료도 찾기 힘들었다. 10년 단위의 만화사에 몇 년을 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은 고스란히 현대만화사의 원안이 되었다.

두 번째 글은 한국만화 100주년 도록에 실린 한국만화 100년사의 앞부분이다. 1909년에서 딱 100년이 지난 2009년, 한국만화 100년 기념전이 열렸다. 전시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전시도록에 100년사를 정리한 글을 기고했다. 만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입장에서 한국만화 100년이란 빠질 수 없는 대형 이벤트다. 그런데 나는 2009년에 연구학기를 받아 일본 교토에 있었다. 1995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만화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한 후(자유기고가로 만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한두 해 전이지만) 15년 만에 한국을 떠나 있던 때가 하필이면 한국만화 10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그래서일까, 우리, 아니 나에게 기초가 너무 부족하다는 반성이 들었다. 그해 미국에서 연구 중인 김낙호 선생과 100주년을 맞이해 한국 만화에 든든한 기초를 다질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함께 참여했던 『한국예술사대계』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10년 단위로 진행된 예술사에서 60, 70, 80년대는 내가, 90년대는 김낙호 선생이 집필했다. 자연스레 서로 앞, 뒤를 나누어 맡아 전체 만화사를 완성시켜 보기로 합의했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었다.

만화의 시작을 만화언어의 시작과 동격에 놓는 무모함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만화가 대중문화로서 대중과 만나는 시작을 찾아보자고 했다. 여기에 하나 더. 적어도 원천자료의 확인이 가능한 시대에서 시작하자고 했다. 한참 논의 끝에 대중문화의 강력한 힘을 지니지 못했던 일제 강점기의 만화를 제외하고, 1945년을 기점으로 삼아 현대만화사라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사실 본격적인 현대만화의 역사는 「아리랑」이 창간된 1955년과 「만화세계」가 창간된 1956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시기의 마무리는 1967년 「합동출판사」가 제작, 유통에 있어 독점체제를 만드는 해로 삼았다. 현대만화사의 첫 시기를 제외하고는 무난하게 십년 단위로 시대를 구분했다.

전체 원고를 가다듬으면서도 새로운 사실이 계속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주제는 한국만화 미시사로 독립시켰다. 현대만화사에서 다루지 못한 근대만화의 시작과 각각 시대를 투영하는 장르로 판단한 SF와 명랑만화로 전체 역사를 살펴보았다. 근대만화 시작과 관련된 글을 집필하며, 근대만화 초기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이어지는 문화전파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1930년대 미국만화 황금기의 만화가 일본으로의 수입이 중단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일본은 전쟁이 끝난 후 흔히 말하는 영웅물이 아닌 1920년대 미국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한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에서 다시 이야기를 쌓아 올려 오늘에 이르렀다. 만약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하지 않고 사이좋은 관계로 지냈다면, 일본도 한국도 영웅 만화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덧없는 생각도 했다. 사실 국경 간 문화이동 문제, 특히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만화의 국경 간 문화이동 문제에 대해서는 김낙호 선생이 쓴 해적만화까지 확장하여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현대예술사대계』로 우리에게 한국만화사를 새롭게 연구할 기회를 준 이영미 선생과 기쁜 마음으로 이 복잡한 출판작업에 참여해 주신 곽경신 대표와 한국만화를 여전히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과 만화연구자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2010년 11월, 공저자 박인하

Leave a Reply

늘 공사중.